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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공간

<딸에게 주는 레시피> / 공지영 著 그리고 나의 자존감 이야기.

by 레니 Rennie 2017.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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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에게 주는 레시피 / 공지영 著 / 한겨례출판





이 책은 내가 2015년 여름 우연히 발견하고, 작년 말까지 (그러니까 내가 어느 정도 자존감을 회복한 시기까지) 매일 먹어야만 하는 약을 복용하듯, 일부러 챙겨 읽은 책이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서 처방받아온 약을 아침저녁에 챙겨 먹듯이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 자기 전에 하나 매일 두 개의 글을 말 그대로 복용하였다.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엄마가 딸에게 주는 비법서 같은 거다. 그런데 그 주제가 단순히 '요리'가 아니라 '삶'이다. 책에서 화자는 딸에게 엄마로서, 같은 여자로서 그리고 인생선배로서 친근한 말투로 다정하게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 단호하게 대화를 걸어온다. 



친구와 싸우고 나서 속상할 때,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진상 손님을 만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그럴 때 엄마는 말이야', '엄마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이라고 운을 떼는 엄마와의 대화처럼 계속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흥분이 가라앉고 눈이 한번 크게 떠지면서 어쩐지 고개가 끄덕 지는 그러면서 속으로, '엄마 말이 맞아. 이제 더 이상 바보같이 굴지 말아야지.' 다짐하게 되는 그런 책 말이다. 



이 책과 관련된 나의 이야기를 조금 써보려고 한다. 이 책을 만났을 때 나는 3년 가까이 폭식증을 앓고 있는 중이었다. 그 시작은 남들이 꽃만큼이나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대학교 새내기 시절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좋아했던 사람에게 실연을 당했다. 그 무렵 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무리하게 체중을 감량했었다. 실연에 따른 상처와 다이어트 부작용이 한꺼번에 밀려와 폭식증을 유발한 것일까. 나는 다시 10kg 가까이 체중이 불었다. 불어난 체중은 또 다른 스트레스로, 또 다른 폭식을 불러왔다. 폭식-살찜-스트레스-또다시 폭식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그야말로 카오스였다. 살이 찌니 평소에 좋아하던 옷이 맞지 않았고 사람들을 만나기가 싫어졌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한동안 울기만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먹기만 하더라. 외출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누군가의 표현 그대로 외로운 마음을 음식으로 채웠다.



폭식증에서 벗어나려고 나름대로 열심히 발버둥 쳤다. 폭식증의 근본적인 원인은 모른 채로 인터넷에 떠도는 식이요법으로 어떻게든 정상인처럼 보이려고 노력했다. 며칠 잘 되다가 폭식하고 절망하기를 반복했다. 제자리를 걷는 기분이었고 어쩌면 나에게 식욕을 조절하지 못하는 악마가 끼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여전히 나는 스스로를 내 식욕 하나도 통제 못하는 아주 한심하고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 정신과에 가지 않았냐고? 나도 그 점이 참으로 애석하다. 하지만 나 역시 정신과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대한민국의 한 사람이었고(정신과에 대한 알 수 없는 편견), 분별없이 어렸다)



그렇게 반쪽짜리 해결법에 반쪽짜리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구제불능이 구 나하고 절망하고 있을 때 우연히 이 책을 만났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놓쳐, 정류장 근처에 있는 서점에 생각 없이 들어간 것이다. 아기자기한 표지 일러스트에 눈길이 가서 책을 집어 들었다. 책 표지에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너는 소중하다고. 너는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일을 절대로 멈추어서는 안 돼." 이 문구를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뭐지. 나는 직관적으로 이 책을 사야 한다고 알았다. 그땐 자존감이니 자기 효능감이니 그 개념 자체도 생소할 때였고, 내 의식 속에서 폭식과 자존감 사이에 어떠한 알고리즘도 없을 때였다. 무리한 다이어트와 실연의 상처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했을 뿐. (다만, 이때쯤 내 속에 분명 뭔가 결핍되어 있다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우리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들, 나를 파괴하는 생각들은 잡초와도 같아서,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어느 순간 우리 마음속의 정원을 파괴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마구 파먹어버린다고. 그래서 긍정적인 생각에는 지속적으로 물을 주고 가꾸고, 부정적인 생각은 부지런히 솟가내 버려야 한다고. 의식적으로 반복하여 꾸준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보고 나서 다짐했다. 매일 이 책을 조금씩 보자고, 상처받은 나를 위로하고 부정적인 마음을 조금씩 덜어내 보자고. 그렇게, 이 책을 매일 입 속에 약을 털어 넣듯 매일 복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꾸준히 읽어왔지만, 이토록 필사적으로 본 적이 있었던가? 단순 재미를 위해 혹은 명목상 읽은 적은 많지만 생존을 위한 독서는 처음이었는데,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로 필사적이었다.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울면서 책을 읽기도 하고, 잠에서 깨자마자 뭔가 먹고 싶은 생각이 들 때면 음식 대신 책을 들었다. 음식 말고 책에 집중하라고, 스스로에게 협박을 하기도 했다.











폭식이 이미 시작되고 나면, 의식과 이성은 간데없고 부정적인 마음만 폭주를 하기 때문에, "긍정적 주문! 자존감 회복! 을 위해 책을 읽자"하는 의식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다.-경험상, 폭식이 시작되면 이미 내가 내가 아니다. 이미 폭발해버렸는데, 그 순간 책을 본다고 입에 뭔가를 넣는 것을 행위를 바로 멈출 수 없었다. 그럴 수 있었다면 폭식으로 이토록 오래 고통받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폭식을 하던 하지 않던 이 책을 아예 시간을 정해놓고 보는 것으로 정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레시피 하나를 읽고, 저녁에 자기 전에 다른 레시피 하나를 보았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책을 보고 일상을 지내다가, 점심쯤 어떤 감정으로 인해 폭식을 해버렸다면, 저녁쯤에는 폭식으로 흥분한? 마음이 수습된 후였다. 그럼 정해진대로 저녁에 정해둔 시간에 책을 봤다. 폭식을 하지 않은 날도, 그냥 정해 놓은 대로 책을 봤다. 그리고 책의 레시피대로 생각하려고 애썼다 초반에는 책을 봐도 폭식을 했다가, 안 했다가 퐁당퐁당 폭식을 했다. 그래도 사이사이에 책을 읽으니 잡초에 강한 농약을 들이붓지는 못해도, 비록 느리지만 잡초를 들여다보고 일일이 손으로 뽑아 내버리는 수준 정도로 관리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과정들을 꽤 반복했다. 틈틈이 자존감과 관련된 다른 심리학 책도 찾아 읽고, 인터넷에서 전문가들이 써놓은 글도 읽었다. 그렇게 괜찮게 지내다가 또다시 역행하여 반갑지 않은 이벤트-폭식-이 찾아와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이 책을 읽고 그렇게 지낸 것이다. (그저 폭식과 함께, 이 책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또 그냥 가끔은 목차를 보고 그때그때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레시피를 찾아 읽기도 했다. 그렇게 책의 레시피대로 살면서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니 일상에 잠식해있던 폭식이 조금씩 조금씩 물러나고, 그 자리에 보통 일상의 것들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왔다.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내가 1. 첫사랑에 크게 실패하고(완벽히 차이고) 2. 거기다가 다이어트한다고 몇 달 동안 몸에 극심한 스트레스 줬다. 는 그 두 가지 요인이 컬래버레이션하여 나에게 몰아쳐서 재수 없게도, 평소에 '아주' '멀쩡'하고 정신과 신체가 모두 건강한 '아무 문제도 없는' 나에게 폭식이라는 엄청나게 고약한 시련이 다가온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그것의 필요조차도 모르는 사람이며, 언젠가는 자존감 문제로 크게 한번 인생이 뒤흔들리고야 말 시한폭탄이었다는 것을. (차인 것과 다이어트 부작용은 단초였을 뿐)



이 책을 읽는 것으로 폭식하던 습관을 완전히 고치고 자존감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 친구들, 애인 혹은 엄마와 같은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고, 그들이 나를 위로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기를 그토록 바랬던 사람이었다. 남에게 나에 대한 판단은 함부로 맡기고, 타인의 인정하나에 일희일비했다. 남들에게 인정을 구걸하고, 위로와 사랑의 말을 바랄 것이 아니라 그 말은 결국 나만이 나에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인지'이며, 내 자존감 부족에 스스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다. 그 '인지'가 자존감 회복을 위한 시작이자 전부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나에게 부족한 것은 먼저 '아는 것'이 시작이니까. "사랑은커녕 나 자신을 가장 하대하는 사람은 나구나"하는, 어딘가 억울하고, 스스로에게 미안하고 눈물이 나는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뭔가 광명을 찾은 그 첫 느낌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런 깨달음이 나에게 온 것이다. 자신을 사랑한다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1.자존감은 생겨먹은 자체가 지속적으로 관리해줘야 하는 연약한 것이다. 하지만 그 면역은 기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육체의 건강만큼 정신의 건강도 매일 매일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2.우리는 모두 특히 마음케어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음을 또한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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